천연염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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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의 의미 및 역사

염색의 시초는 에집트의 나일강 하류지역, 중근동의 디그리스유프라테스강 하류, 홍화의 원산지인 에디오피아로부터 시작하여 인도(印度) 등 고도한 고대 문명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왔다. 그 유몰로는 BC 3000년경의 이집트(Egypt)의 테베(Thebae)고분, 미이라(Mum my) 전포에서 발견된 담황색, 진황갈색, 황갈색에 흑갈색 줄무늬 등이 나타난 홍화염색과 인도의 마 헨조다로(Mahenjodaro) 유적에서 출토된 꼭두 서니 목면 단편이 나왔고, 남(藍 : 쪽) 염색이 이 집트의 미이라 전포에서 발견되었다.

중국에서는..

중국에서는 순자(荀子) 근학편(勤學篇) 앞에 푸른 빛 은 쪽으로 물들이지만 “쪽보다도 더욱 푸르다”(靑取之於 藍而靑於藍)라고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라는 말로 쓰여 져 있다. 이 책이 쓰여진 기원전 3세기경 이미 중국에서는 쪽염이 성행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견(絹)의 시초는 B.C 2600년경 중국의 황제 원비(元妃) 서능의 나조(螺祖)가 누에를 시작하여 직조와 염색술이 발달되었다.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염색의 역사는 선사시대에서는 동물벽화에 나타난 것으로 그 대상은 말, 순록, 물소, 산양, 사자, 곰 등을 그리거나 그 동물의 뼈나 돌 등에 조각함으로써 공포를 막는 주술적인 행위로써 나타났던 것이다. 직물 생성의 근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웅기군 송평리 궁성 행영면 지경동의 유적에는 철제 바늘 크기의 골침(骨針)이 나왔고 구석기 시대에는 깃털이나, 모피 등으로 그리거나 직접 손으로 그리기도 하였는데 주로 광물성안료와 식물성 염료를 사용했으며 구석기시대에 이르러 점차 가죽이나 천으로 된 의류에 처음으로 염색하기 시작했다.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바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토기, 토우, 청동기의 무늬 등을 표출하였는데 이 시점 토기에 붉은 색, 검은색이 나타나고 있는 간토기 즉 단도마연토기(丹途 麻硏土器)에서 광물질 안료를 사용하여 문질러서 구워 광택이 나는 토기를 제작한 것을 보아 추측할 수 있다. 청동기 이후 초기 철기시대에 들어서 대표적 유적으로 의창 다호지 유적의 목관묘, 돌 무덤 등에서 동검, 동모, 띠고리 등의 청동기류와 철검, 철모, 꺽창, 손칼 등의 철기류와 칼집, 활, 화살, 두(豆), 배(杯), 합(盒), 소쿠리 부채, 붓 등의 칠기류가 출토되었다. 특히 목태칠기(木胎漆器)의 용기류 중 주칠(朱漆)의 문양과 흑칠을 한 것이 주로 출토된 것에서 당시의 염료 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유적으로 평양의 낙랑유적에서도 칠기류가 출토되었는데 왕우묘(王旴墓) 출토의 채화칠판(彩畵漆盤), 채협총(彩篋塚)의 채화칠협(彩畵漆篋) 등을 낙랑출토 칠기류의 대표적인 것에서도 염색기술을 엿볼 수 있다. 평양의 낙랑고분에서 잇꽃종자가 발굴되었다는 것은 홍화염색을 했다는 근거가 확실하다. 문헌에 기록된 염색의 시초를 보면 삼국지의 삼한 위지 동이전에 변한(弁韓)과 진한(辰韓)에서 광폭세포(廣幅細布)의 옷감을 짜서 청색의복을 착용하였으며 청색.적색.자색 등의 색실로 문양을 넣어짠 금직(錦織)이 사용되었다. 또 부여의 기록으로는 흰옷을 좋아하여 나라 안에서는 베로 만든 흰옷을 입었고, 나라 밖(즉, 외출시는)에서는 증(繒), 수(繡), 금(錦), 계(罽)를 착용하였다 한다(三國志 : 권 30, 魏志東夷傳, 夫餘, 弁辰).

고구려때는..

고구려때는 벽화에서 생활풍속도에 나타난 복식의 색채는 홍색, 청색, 황색, 녹색의 염색 기술과 점문(點紋), 원문(圓紋)의 문양과 함께 삼힐(三纈)의 염색기법이 있었으며 그 기법이 신라 공예품에서도 나타나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분벽화의 처용무에서 오방 오색(五方 五色 : 오정색, 오간색)이 그려져 있고, 왕은 오채(五采)라 하여 색깔 옷을 착용했으며 왕복은 녹의(綠衣)를 입었으며 대신은 청색 옷을 입고 새깃을 머리 양옆에 꼽고 가죽신을 착용했다. 서민은 갈옷(褐衣)을 입었으며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썼다(당서(唐書), 권 220, 동이열전).

백제는..

백제는 고이왕 27년(260 AD) 때 금색제도를 정하여 신분을 확인하도록 하였는데 그 시대에 적색, 청색, 황색, 자주색 등의 색채가 있었으며 그 시기의 유적으로 공주에 있는 송산리 벽화고분(6호분)의 사신도, 일월도와 부여 능산리 고분 벽화의 사신도, 연화문, 구름무늬 등에서도 주, 황, 청, 흑색의 색채가 보여 뛰어난 염색기술을 볼 수 있다.

신라..

신라의 염색 기술은 514년 법흥왕 때 육부인색존비(六部人色尊卑)의 제도가 정해지고 그 직위에 따라 자색, 비색, 청색, 황색의 옷을 입게 하여 자초, 꼭두서니, 남(쪽), 황벽, 울금 등의 식물염료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초(지치), 꼭두서니, 남(쪽), 황벽 염색관계 부서로는 염궁(染宮)에 11명, 홍전(紅典)에 6명, 소방전(蘇芳典)에 6명 그 이외 찬염전(攢染典) 등을 두어 전문적으로 염색을 담당하게 하였다.

고려는..

고려는 사영공장과 관영공장에서 염직물을 생산하였다. 특히 염색을 관장하기 위해 관영직조 수급장인 도염서(都染署) 등에 전문장인인 염료공과 염색공을 두어 염색을 담당하게 하였다. 염색 중에서도 자초(紫草) 염색은 중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기술과 좋은 산자초 품종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의 염직물 생산은 중앙집권에 의한 엄격한 사회구조 속에서 주로 양반 계층 이상에 의해 발전되었다. 염색은 경공장(京工匠)에, 청염장(靑染匠), 홍염장(紅染匠), 황단장(黃丹匠) 등 염색장이 분업화되어 염색을 색별로 관장하였다. 경공장에서 생산되는 것과 농촌의 삼베, 모시, 무명 등의 수직물이 조세로 납부되어 양반의 생활물품 및 교역품에 충당되었다. 조선시대의 주된 염색은 홍색, 남색, 자색, 녹색, 황색 이외에 50여종의 염재로써 105색깔 등 다양한 간색을 물들였다. 조선시대의 염색방법은 침염[단색 위주]을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삼국 및 고려시대에 발달하였던 채회염[그림을 그려 문양을 나타냄]과 힐염은 거의 사라졌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물들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염액이 스며들지 않게 방염되는 재료를 이용하여 무늬를 넣는 것을 방염(防染)법이라 하는데, 예전에는 한국ㆍ일본ㆍ중국에서 방염법으로 문양 염색한 직물을 '힐'이라 하여 총괄적으로 지칭하였다. 인도ㆍ동남아시아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삼국시대부터는 이 기법으로 문양염을 했다.] (조경래 교수님, 김지희 교수님 교재중 발췌)